1. 재산을 소유할 수 있을까
개인의 자주권은 현대적 재산 개념을 향한 첫걸음이었을 뿐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은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드는 것은 내 것이라는 논리에 따르면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즉 땅, 강, 동물, 나무의 소유를 주장하는 일은 도둑질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만든 무언가를 내 것이라고 우기면 내가 도둑이 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에서 비롯된 경제사상의 두드러진 계보가 있다. 프루동, 카를 마르크스, 헨리 조지, 실비오 게젤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프루동은 '재산 소유는 도둑질'이라고 선언했다.
어떤 재산이 합법적으로 이전된 경로를 따라 그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 결국 최초의 소유주는 그것을 그냥 가져간 사람이며, 우리 것 혹은 신의 것이 영역에서 내 것의 영역으로 분리시킨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대개 강제로 이루어졌다. 드넓은 북미 대륙이 지난 3백 년간 힘으로 모두 장악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수천 년 동안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 돼왔다. 하지만 로마 시대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일은 없었다. 땅은 공기나 물과 다름없었고 소유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최초의 소유주들은 땅을 합법적으로 취득할 수 없었다. 그냥 가져야만 했다.
2. 토지는 곧 재산이다
토지소유권이 농업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렵인들은 땅에 투자할 일이 거의 없었지만, 농부는 식량 생산을 더 늘리기 위해 땅에 공을 들였다. 농부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 1년 내내 그렇게 일하는데 채집인들은 수확기에 와서 수확한 식량으로 놀고먹는 것이 분명 부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땅의 생산성을 높이는 장려책으로서 사유재산을 허용했다고 추정된다. 하지만 땅 자체를 갖기보다 생산량이 증가한 만큼 갖는 방법이 더 정당하지 않았을까. 원래 땅에 대한 권리는 거의 언제나 개인이 아닌 공동의 것, 마을이나 부족의 것이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나, 중국의 주 왕조 같은 대규모 농업문명에서도 땅의 사유와 개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땅은 왕의 재산이고, 왕은 지상의 신을 의미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모든 땅은 곧 신의 재산이었다.
땅에 공을 들여 얻은 산물에 대해 권리를 갖는 것과 땅 자체를 소유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개념적 간극이 있다. 서양에서 토지소유권이라는 절대개념은 아마도 그리스인의 개인 개념을 자양분으로 로마시대에 처음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땅은 로마시대에 도미니움이라 불린 것에 속하게 되었다. 도미니움은 그 뒤에 더 이상 아무 권리도 없는 최종적 권리, 그 자체는 합법화될 필요가 없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합법화하는 권리, 쓰고 즐기고 남용할 권리였다.
3. 동양의 토지소유권
동양에서 명백한 토지소유권은 적어도 개념상으로는 조금 더 일찍 시작되었다. 중국의 경우는 기원전 4세기 상앙의 통치 시기, 어쩌면 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옛날에는 땅을 사고파는 것이 부적절한 일이었다는 유교의 진술이 증명하듯이, 토지소유권이 언제부터였는지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역사전 기억의 문제였다. 인도에서도 사적인 토지 소유가 알려진 것은 기원전 6세기 경이지만, 증거와는 다소 모순되는 점이 있다. 어쨌든 인도에서는 영국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대부분의 토지가 공공의 소유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땅이 공공의 소유이거나 봉건영주의 소유였지만, 봉건영주의 소유도 땅을 양도 가능한 상품으로 자유롭게 사고파는 완전한 현대적 의미의 소유는 아니었다. 봉건영주들은 그 땅을 각종 봉사, 소작료 그리고 결국은 돈을 바치는 대가로 봉신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영국에서는 15세기까지 땅의 자유로운 양도가 대체로 불가능했지만, 이후 인클로저 법령에 힘입어 광대한 공유지가 급속히 사유화되었다. 유럽 대륙 전역이 농노해방을 통한 토지 사유화 등으로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그전에는 아무 강에서나 낚시를 하고 아무 숲에서나 사냥을 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공유지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개인들이 생겨났다. 땅 소유의 기본 틀이 변했다. 중세 농노는 재산 소유자와는 거의 상반된 위치에 있었다. 즉, 땅이 그를 소유했다. 농노는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소속된 땅을 양도할 권한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임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농노가 자신이 속한 땅을 떠날 수 없었다면, 이제 소작인은 소작료를 지불하지 못해서는 물론, 그저 땅 주인의 변덕만으로도 땅에서 쫓겨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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